요즘 ‘오마카세’ 식당이 인기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손님은 셰프에게 메뉴를 맡기고, 셰프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만들어 제공한다. 일종의 주방 특선인 셈이다. 다만 대부분 일식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먹걸리 등 우리 술과 함께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평막걸리로 잘 알려진 지평주조는 최근 우리 한식에도 위와 같은 개념을 도입한 한식 맡김차림 공간 ‘푼주’를 열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푼주는 우리 술과 음식, 그리고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우리 술에 대한 문화를 한층 올리기 위해 탄생한 공간이다. 오마카세의 우리 말 표현이라 할 수 있는 ‘맡김차림’은 메뉴의 종류와 요리 방식을 모두 셰프에게 맡기고, 최고의 제철 식재료로 만든 셰프의 메뉴를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맡김차림 공간 ‘푼주’ 전경 / 사진=지평주조 제공

공간 이름인 ‘푼주’는 옛 사대부 또는 왕실에서 식음을 담던 전통 식기를 의미한다. 지평주조는 이 푼주를 음삭과 술,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으로 재해석하고, 하나의 고급화된 우리 술 문화 플랫폼을 제시하기 위해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깔끔하면서도 모던한 공간이 돋보이는 푼주에서는 김세진 셰프의 제철 한식 맡김차림과 석탄주, 부의주, 백화주 등 지평주조의 프리미엄 막걸리 3종을 페어링해 즐길 수 있다. 물론 녹파주, 고흥유자주, 밀감꿀술, 세종대왕어주 등 약주와 이강주, 이도, 추사, 밀담과 같은 증류주도 즐길 수 있으며, 샴페인도 마련되어 있다.

▲ 맡김차림 공간 ‘푼주’ 전경 / 사진=지평주조 제공

푼주는 맡김차림으로 운영되는 만큼 선택할 수 있는 메뉴도 ‘맡김차림’ 하나뿐이다. 가격은 1인에 6만 9천원이다(2022년 8월 25일 기준)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제공되는 음식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요리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곁들여 지는 셰프의 친절한 설명까지 감안하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 서비스 또한 우수해 제대로 대접받는 듯한 분위기에서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참고로 코스에 제공된 일부 메뉴는 단품으로 추가 주문할 수 있다.

▲ 사진=지평주조 제공

제공되는 음식은 총 12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2시간에 걸쳐 차례로 준비되어 나온다. 자리에 앉으면 막걸리로 만든 지평바게뜨와 양배추, 그리고 보리된장으로 코스는 시작된다. 바게뜨는 서리태가 첨가된 버터에 찍어 먹고, 구수한 맛의 보리된장을 양배추에 얹어 입안에 넣으면 침샘을 자극해 식욕을 돋구어 준다. 참고로 음식이 나올 때마다 셰프로부터 어울리는 술을 추천 받아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다음으로 나오는 음식은 김장아찌, 전복이 함께 곁들여진 계란찜이다. 계란 껍질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 눈길을 끈다.

▲ 왼쪽부터) 지평바게뜨, 양배추와 보리된장

▲ 김장아찌, 전복이 함께 곁들여진 계란찜

계란찜을 다 먹고 나면 푼주의 시그니처 메뉴인 ‘주병합 타파스’가 나온다. 전통공예작가 전상근의 4단 주병합을 활용한 요리로, 스페인에서 식사 전에 술과 곁들여 간단히 먹는 소량의 한입거리 음식인 타파스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메뉴이다. 푼주 오너 셰프인 김세진 셰프가 기획해 탄생한 것으로,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주병(술병)이지만 주병을 나누면 정갈한 타파스가 드러나는 보는 즐거움까지 준다.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4가지 타파스가 준비되어 있으며, 취향에 맞는 우리 술과 페어링하기에도 좋다. 물론 요리는 계절에 따라 제철 식재료로 바뀐다.

▲ 푼주의 시그니처 메뉴인 ‘주병합 타파스’

김부각과 아귀간, 단새우를 활용한 타파스는 한입에 먹기 좋게 바구니 형태로 만든 김부각에 맛간장에 재운 아귀간 무스를 넣어 단새우 토핑으로 마무리한 요리이다. 김부각의 바삭함과 아귀간의 풍미가 함께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문어 타파스는 쫀득한 문어, 하루 숙성한 토마토와 부드러운 당근 퓨레가 어우러진 다양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참치육회 타파스는 참치를 얇게 채썰어 준비한 양념과 섞은 후 감태에 싸 먹는 메뉴이다. 한식의 특성상 음식의 재료가 무겁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소고기 대신 참치로 가볍게 표현했으며, 감태로 바다의 향을 더 부각시켰다. 고수 씨의 플레이버를 넣어 만든 파인애플칩은 단맛과 신맛이 공존하는 한국식 주전부리이다. 바삭한 식감과 파인애플의 은은한 달콤함이 우리 술과 만나 대비 효과를 일으킨다.

▲ 푼주의 시그니처 메뉴인 ‘주병합 타파스’ / 사진=지평주조 제공

다음으로는 제철 모듬회가 나오며, 통새우전이 제공된다. 메인요리로 푼주보쌈과 함께 오늘의 해장국이 앞에 차려진다. 특히 육수 분야에서 최연소 대한민국 요리명인으로 선정된 김세진 셰프의 해장국은 얼큰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다. 끝으로 로즈메리와 레몬 제스트가 곁들여진 오렌지 셔벗이 디저트로 나오면서 코스는 마무리된다.

▲ 제철 모듬회

▲ 왼쪽부터) 푼주보쌈, 오늘의 해장국

▲ 로즈메리와 레몬 제스트가 곁들여진 오렌지 셔벗

모든 음식에서 정성이 깃든 깊은 맛이 느껴지지만 또 한편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각각의 요리를 담은 그릇이다. 리움스토어와 협업해 전통공예작가 전상근의 수저, 잔, 그릇 등을 테이블웨어로 활용함으로써 한국의 멋스러운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한쪽 공간에는 지평주조의 양조장에 실제 있던 대들보를 세워 놓음으로써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 지평주조의 양조장에 실제 있던 대들보가 내부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푼주에서는 최근 선보인 지평주조의 프리미엄 탁주를 즐길 수 있다. ‘석탄주’, ‘부의주’, ‘백화주’ 총 3종으로, 선조들의 주조 방식에 현대적인 제조공법을 접목시켜 새롭게 재현했으며, 재료에서 오는 자연 감미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왼쪽부터) 지평주조의 프리미엄 막걸리 백화주, 석탄주, 부의주 3종 /사진=지평주조 제공

‘석탄주(惜呑酒)’는 ‘그 향과 맛이 너무 좋아 입에 머금고 차마 삼키기 아까워 탄식한다’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술로, 가벼우면서도 자연적으로 나오는 탄산감이 식전과 식사 중에 입 안을 정리하기에 좋다. 알코올 도수는 일반 막걸리보다 약 2배 이상 높은 12도로, 은은한 단맛과 산미, 단정한 바디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부의주(浮蟻酒)’는 발효 시 떠오르는 찹쌀의 모습, 음식과 어우러지는 술의 텍스쳐가 모두 ‘하늘에 뜬 구름’과 같다고 해서 이름이 붙어졌다. 알코올 도수 8.5도이며 부드러운 목넘김과 잔잔한 여운의 단 맛으로 식전, 식중 모든 요리에 잘 어울리는 만능 술이라고 할 수 있다.

‘백화주(百花酒)’는 알코올 도수 8.5도로 술병을 따면 ‘꽃으로 가득한 뜰의 향기처럼 신선한 향취’가 느껴진다. 풍성하고 기분 좋은 단 맛을 자랑해 따로 마시거나 마지막 디저트와 함께 마시기 제격이다.

프리미엄 막걸리 3종은 한식 맡김차림 ‘푼주(PUNJU)’와 이태원 경리단길 레스토랑 ‘초승달’에서만 한정 판매하고 있다. 지평주조에 따르면 추후 소비자 반응에 따라 전국 유통 및 대중화도 고려 중이다.

문정동에 위치한 푼주는 독립적인 룸도 운영 중이다. 본 공간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가족모임이나 동창모임 등 사적인 행사 용도로 활용하기에 최적이다. 푼주 예약은 ‘캐치테이블’을 이용하면 된다.

▲ 프라이빗 룸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