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그리고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감동적인 공연이 11월 21일 오후 7시에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진행된다.

장애가 있지만 대중의 인정과 존경, 인기까지 얻는 예술가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피아니스트 이희아, 휠체어 댄서 김용우, 클라리넷 연주자 이상재 등이 전문 예술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제한적인 환경은 더 많은 장애 예술가들의 예술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시각장애 연주자가 지휘를 필요로 하는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사례는 찾기 어려우며, 청각장애를 가진 무용수에게 펼쳐진 무대는 많지 않다.

프로젝트 <지금 아니면 언제?-병사이야기>에서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지휘에 맞춰 연주하고,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무용수가 이 연주에 맞춰 춤을 춘다. 이 모든 것은 지휘인지 장치 ‘버즈비트’를 사용하기에 가능 해졌다. 2018년부터 문화예술 기획사 도미넌트에이전시(대표 : 황도민)는 영국의 휴먼인스트루먼트(Human Instruments, 대표 : 바하칸 마토시안)와 함께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휘인지 보조장치 ‘버즈비트’를 개발해왔다.

‘버즈비트’는 특수 제작된 지휘봉으로 지휘자의 움직임을 진동으로 전환하여 연주자나 무용수에게 전달한다. 박자와 속도의 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강약, 볼륨 등 다양한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음악을 온전히 향유하기 어려운 장애예술가에게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활로가 생긴 것이다. ‘버즈비트’는 작곡가 롤프 게하(Rolf Gehlhaar)가 2015년 처음 고안한 장치로, 2018년 영국에서 첫 시연회를 가진 이후 꾸준한 연구와 개발을 거쳐왔다. 국내에서는 2019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우리 동네 음악회>에서 처음 사용됐으며, 올해 1월 22일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전악장 연주에 사용되며 그 성능을 입증했다. 이제 ‘버즈비트’는 그 확장성을 넓혀 시각장애 연주자뿐 아니라, 청각장애 무용수에게도 사용된다.

11월 21일 공연에서는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대표작 <병사이야기>가 무대에 오른다. 1918년 작곡된 <병사이야기>는 스트라빈스키 작품 중에서도 높은 난이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특이한 편성과 음악적 구성, 표현으로 클래식 마니아라면 관심이 많은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만날 기회가 적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에는 시각장애 연주자 2명과 청각장애 무용수 1명을 포함, 총 13명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 라이브 콘서트>를 지휘했던 진솔, 뮤지컬 <신과 함께>의 안무가이자 로댄스프로젝트 대표 노정식, <검사내전>, <안녕?나야!> 등으로 잘 알려진 배우 백현주, 그간 버즈비트 프로젝트 첫 연주부터 함께해온 시각장애 트럼펫 연주자 강재현과 트롬본 연주자 원희승,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폐막식에서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청각장애 발레리나 고아라 등 다양한 예술가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전석무료로 진행되며, 방역 수칙에 따라 사전 예매(https://bit.ly/2ZbjKcP)를 통해 일부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공연 외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휘 워크숍이 진행됐으며, 공연 이후에는 본 공연을 토대로 한 무용 워크숍을 준비 중에 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장편 다큐멘터리 <지금 아니면 언제?>(가제, 감독 최종원)로 제작된다. 추후 OTT와 영화제를 통해 공개될 다큐멘터리는 무대를 준비하는 서로 다른 예술가의 모습과 소통의 과정을 담는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모든 예술가가 장애 여부와는 상관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작품을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점이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 그 자체이다. 만드는 사람의 모습과 장애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여전히 편견이 존재하고, 장애 예술가는 그 편견을 뚫고 나가야만 한다.

프로젝트 <지금 아니면 언제?-병사이야기>는 변화를 위해 대중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은 아직도 장애를, 장애 예술가의 작품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